바보로 살고지고…

No. 106 Name 이춘식 Date 2001.12.22 02:53 Comments 0

내가 어릴적 코메디 프로그램에는 항상 바보 연기를 하여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코메디언들이 있었다. 말을 바보스럽게 하면서 바보같은 행동을 하며 사고를 일으키기도 하고 뭔가를 뒤집어쓰기도 하며 때로는 봉변을 당하기도 하여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다. 그들의 어설픈 바보 연기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박장 대소하며 일종의 카다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 그 내면에는 뭐랄까…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느끼는 자신에 대한 일종의 우월감이 평소 느끼는 열등감에서 자신을 해방시켜 주는 그런 종류의 쾌감이 아닐까.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동생과 함께 일정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시간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TV앞에 앉아서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며 깔깔대며 웃던 기억이 생생하다.

바보에게 열등감을 느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래서 바보 연기는 항상 환영을 받으며 항상 친숙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신문기사, 최연소박사학위 수여자에 대한 소식, 강남의 부자동네에서 벌어지는 천문학적 액수의 소비행각들… 이러한 소식을 접하는 순간 사람들은 거리감을 느끼며 왠지 모를 자기 연민에 빠져들기도 한다. 일전에 반평생을 초등교육에 헌신하셨던 아버님을 통해 들은 말씀이 떠오른다. 탁월한 체육선생은 아이들의 체육을 탁월하게 돕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씀의 본 뜻은 때로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는 체육선생을 보며 아이들은 자신감을 가지게 되며 발전의 여지를 가지게 된다는 것. 오르지 못할 산과 같은 모습에 대해 사람들은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치는 위대한 구원사역에서 바로 이 원리를 사용하셨다. 아무도 거리감을 느끼지 않으며 열등감을 품지 않을 가난한 부모의 아기 모양으로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를 보내셨다. 그 귀하신 몸이 구유에 누인 것이다. 가난한 목수의 아기에게 사람들은 쉽게 다가갔고 그러한 낮은 신분으로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왕자의 신분으로는 세리와 창녀의 친구가 될 수 없으며 저 우물가의 여인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으리라. 세상에 팽배한 처세술과 출세를 향한 약삭빠른 논리는 보려들지 않는 눈먼 바보. 예수께서 나신 그 말구유가 그러했고 걸어가신 갈보리길이 그러했으며 힘없이 달리셨던 십자가가 그러했다.

어릴적 미술학원에서 몇개의 도형을 그려놓고 크레파스로 장시간동안 도형을 색칠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약간이라도 벗어난 색에 대해 선생으로부터 핀잔을 여러번 들으며 미술학원을 그만두었다. 컴퓨터로 그려진 흠없는 도형들보다 어린아이의 손으로 그려진 일그러진 동그라미가 좋다. 사진같이 그려진 미술대회 입선작보다는 어설프지만 풋풋한 정이 느껴지는 아이들의 그림이 좋다. 똑똑하여 가까이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 독야청청 1등으로 살기보다 뭔가 부족해보이나 수수한 냄새를 풍기며 주변사람들을 포용하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그런 보통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가진 비전이 사람 얻는 비전일진대 내 남은 일평생 손해보며 그렇게 바보로 살고싶다.

essay_choon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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