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간 숲

No. 70 Name 이승묵 Date 2003.10.02 22:38 Comments 1

태풍 ‘매미’가 지나간 숲에 갔다. 꺾이고 찢어지고 뽑혀버린 나무들이 군데군데 흉하게 누워있었다. 일꾼들이 전기톱으로 나무를 토막 내어 치우고 있었다. 산책로에는 태풍에 못 견뎌 떨어진 초록 낙엽들이 어지러이 뒹굴고 있었다. 새의 울음소리와 벌레소리는 잠잠하고 대신 전기톱 소리가 숲을 울리고 있었다. 기둥뿐인 커다란 나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태풍을 맞고도 보란 듯이 버티고 서있는 그 모습이 놀라웠다. 아마 가지와 잎이 없어서 바람을 피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뿌리째 뽑혀 드러누운 나무들은 하나같이 뿌리가 적은 대신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하였다. 태풍에 살아남은 나무들은 어디가 달라도 달라보였다. 겉모습부터가 건실한 나무들이었다.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제 분수를 지켰던 나무들이었다. 나는 내 분수대로 살고 있는가. 뿌리를 튼튼히 키우고 있는가. 너무 가지를 늘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나치게 잎을 많이 달고 나풀거리는 것은 아닌가. 태풍 ‘매미’가 지나간 황량한 숲을 걸으며 잠시 나를 돌아보았다.  

Comments 1

  1. 이춘식 2003.10.03 05:27

    뿌리의 중요성을 저도 새삼 깨닫게 됩니다.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분수대로 살아가면 맘이 편할것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ssay_mooksee

No Title Name Date
79 힘들어도 (1) 이승묵 2006.05.12
78 간절히 (1) 이승묵 2006.05.12
77 불편하므로 (2) 이승묵 2006.05.12
76 매봉 등산 이승묵 2005.10.09
75 콩을 기르며 (2) 이승묵 2005.08.28
74 물난리 (1) 이승묵 2004.08.08
73 시동이 걸렸다 (1) 이승묵 2004.03.13
72 플로리다 여행 (1) 이승묵 2004.03.13
71 누수 (2) 이승묵 2003.11.12
70 태풍이 지나간 숲 (1) 이승묵 2003.10.02
69 우상 (1) 이승묵 2003.08.31
68 폭포 앞에서 이승묵 2003.06.15
67 니모를 찾아서 (1) 이승묵 2003.06.15
66 봄은 왔는데 이승묵 2003.04.07
65 야베스의 기도 이승묵 2002.12.22
64 문조를 보내고 이승묵 2002.11.19
63 함께 함 이승묵 2002.11.12
62 모과 한 개 (2) 이승묵 2002.09.23
61 충고 이승묵 2002.07.09
60 문조의 털갈이 이승묵 2002.07.09
59 체벌 이승묵 2002.07.06
58 이승묵 2002.07.01
57 만두 이승묵 2002.05.30
56 타자 연습 이승묵 2002.05.15
55 (1) 이승묵 2002.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