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설비

No. 11 Name 이승묵 Date 2001.02.04 05:25 Comments 0

집안에 수리할 일이 생기면 S설비를 부른다. 얼른 오지 않는다. 조바심이 나서 다시 찾아가 부탁한다. 애가 탈대로 타 지칠 때쯤에서야 나타나서는 갖은 변명을 늘어놓는다. 일만 해도 그렇다. 약간만 손보면 될 법한 것도 크게 헤집어 놓고 일한다. 수리비도 턱없이 비싸게 부른다. S설비는 매번 그런 식이었다.
어느 겨울날 아침, 옥외 화장실 물통이 고장 났다. S설비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였다. 금방 오겠다던 사람이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또 찾아갔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사람이 온데간데없었다. 발길을 돌려 인근에 있는 딴 가게를 찾아보았다. 태양설비, 일을 부탁하자 단숨에 달려와 고치곤 별 것 아니라며 수리비를 받지 않았다. 나는 너무 고마워서 얼마를 건네려 했더니 굳이 사양하며 너털웃음을 남긴 채 총총히 사라졌다. 그날이후 태양설비는 우리 집의 각종 수리를 맡았고 불변의 단골이 되었다. 태양설비, 그 주인은 수도꼭지 하나라도, 부탁만 하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달려와 고쳐주고 간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 웬만한 공사는 거의 잡부를 쓰지 않고 혼자서 한다. 반나절 일은 점심을 먹고 와서 한다. 해머를 쓸 때는 매우 조심스레 한다. 사전에 공사계획을 내놓고 동의를 구한다. 사후엔 공사에 든 재료와 가격을 소상히 밝힌다. 공사 쓰레기는 깨끗이 치워간다. 그는 항상 웃으면서 일한다. 자기가 하는 일이 돈벌이가 아니고 남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 집 설비 주치의다. 그는 불황을 모른 채 성업 중이다. 언제나 밝은 사람, 그래서 상호도 태양설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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