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편지1

No. 2 Name 이춘식 Date 2000.09.08 05:57 Comments 0

네가 이메일로 보낸 ‘장래 문제’와 ‘침묵의 예수’에 대해 크게 공감하였다.
분별 있고 깊이 있는, 그러면서도 여유 있는 공학도의 면모를 보는 듯하였다.
세련된 문장과 진솔한 묵상에 칭찬과 격려를 보낸다.

며칠 전 네 조부모님 산소에 다녀왔다.
두 시간 남짓, 정성스레 벌초를 하고, 이어서 주변 청소를 하였다.
그런데, 남들이 다 꽂는 조화를, 나는 꽂지 않았다.
환경 개선에 일조하기 위한 명분이다.
버려진 조화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소형 소각로에서 태우는 것을 본다.
플라스틱을 태우는 냄새가 역겹다. 다이옥신이 하늘을 덮는다.
땀을 훔치는 화부의 불평이 안스럽다.

진홍이 아버지 산소에도 벌초하였다.
개울에서 땀을 씻고, 김밥과 약수로 점심을 하였다.
벌초하는 사람들과 이른 성묘객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아름다운 산들이 묘터로 잠식당하고 있다.
기독교 일각에서 벌이는 화장, 장기기증 등의 운동이 빨리 정착되길 바란다.
ㅇㅇ 공원 묘지, 천주교 묘지, ㅇㅇ 교회 묘지…… .
유교 제례, 잘못된 부활관 등이 매장을 부추기고 있다.

곧 추석이다.
기상이변 속에서도 먹을 것들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세상은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여도
보름달은 조용히
서두르지 않고
제 시간에 뜬다.

추석 연휴를 뜻있게 보내길 기도한다.

부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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