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질

No. 8 Name 이승묵 Date 2001.01.17 02:26 Comments 0

“아니 이럴 수가!” 나는 서예 붓을 손에 쥐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는 어린 두 아들에게 가위질을 가르치려고 작고 예쁜 가위 두 개를 사왔다. 시범을 보이고 주의사항을 철저히 이른 뒤 신문지와 가위를 조심스레 건네주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질 않아 감시를 늦추지 않았다. 두 녀석은 순식간에 신문지 한 장을 마음대로 오리고 잘라버렸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내친김에 한 단계 높은 기능을 학습시키기로 하였다. 이번에는 잡지의 사진을 오리게 하였다. 곡선이 있어서 쉽지 않은 가위질이었다. 그런데도 거뜬히 오려내었다. 아내는 아이들을 꼭 껴안아 주었고, 나는 번갈아 무동 태워 방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 당시 나는 한글 궁체를 자습하고 있었다. 어느 날 서예가 친구에게 붓글씨 비결을 슬쩍 물어보았다. 초보자일수록 연장이 좋아야 한단다. 필방에서 좋은 붓을 하나 샀다. 붓걸이에 걸어 놓고 만지작거리기만 하다가 어느 날 한 번 멋지게 써볼 양으로 그 붓을 챙겼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아 글쎄 그 붓끝이 둥근 붓이 되어 있지 않은가. 뾰족한 서예 붓끝을 가위로 다듬어 둥근 수채화 붓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알고 보니 큰 녀석의 소행이었다. 그런데 솜씨 하나만은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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