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따르다보면 때로 연약한 형제를 본다. 믿음이 연약하여 결단하지 못하는 형제… 자주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여 절망에 빠져드는 형제… 항상 같은 죄에 빠져서 돌이키고 또 빠지고 하는 형제 등 여러가지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그들을 ‘어린형제’라고 부르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만 그들을 이해하고 받는데에는 많은 용량이 필요하다. 때로는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지만 기도 속에서 이미 그들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한탄 내지는 판단하는 마음을 떨치지 못할 때도 있으니 아직 주님의 모습을 닮으려면 한참 멀었다. 마음을 같이 해줄 수 있는 형제와 함께 그 어린형제의 필요를 나누는 순간까지도 나는 그 형제의 연약함을 완전히 이해하고 용납하지 못한채 이미 그의 위에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다.
이 시점에서 주님께서는 어떤 눈으로 나와 그 형제를 보실 지 생각해본다. 주님의 눈에는 나나 그 형제나 같은 주님의 자녀가 아니겠는가… 나도 연약함에 넘어지기도 하고 그 형제도 넘어지기도 하는 연약한 주님의 자녀가 아닌가… 주님께서는 나를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실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선하신 눈에 그와 나는 아주 똑같은 사랑이 필요한 존재로 비칠 것이 분명하다. ‘성장한 형제’인 내가 ‘어린형제’인 그보다 더 의로운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 그 형제보다 더 심각한 잘못에 내가 빠져들기도 한다. 우린 똑같이 죄를 저지르지만 돌이키는 속도가 약간 다를 뿐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예수님을 믿기 전에 선행으로 구원받지 못하며 자선사업가나 살인자나 주님 앞에서는 똑같이 죄인이라는 그 진리가 이제 구원받은 이후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조금이나마 성장한 나와 아직도 성장하지 못한 어린형제인 그 형제. 이렇게 양분하는 것으로 나는 주님께서 싫어하셨던 그 바리새인의 잘못된 논리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린 형제’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돌아보며 그를 받아들이고 그를 안아주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Understand. 그 단어를 분석해보면 아래에 서있다는 뜻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본다. 그 형제의 아래에서 그의 발을 씻는 그 순간에 그를 온전히 이해하며 받아주고 안아줄 수 있는 것이다. 그의 필요를 채우고 점점 성장케 하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시지 내가 아니다. 나는 안내자이다. 그 형제를 주님께로 안내해주는 역할에 불과한 것이다. 그와 교제하며 수만가지 조언들로 그를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는 것처럼 그에게 뭔가를 주입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는 않은가. 많은 말이 그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님께로 그를 이끌어주어 주님께 직접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 역할까지가 나의 영역이다. 월권이 될수도 있다.
그렇다. 이제 내가 해야할 일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함께하는 형제들을 더 열심히 종이 되어 섬겨야겠다. 바로 주님께서 하신 일이다. 그리고 그들 아래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이해하고 받아주어야겠다. 그렇게 감싸안고 가는 것이다. 때로 연약함으로 넘어지는 이들에게 다가가 조용히 일으켜주고 부축해주어 천천히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영원한 하늘나라 영광스러운 그곳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