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족함 중에 겪는 결핍

No. 193 Name 이춘익 Date 2001.10.29 21:03 Comments 2

빈 접시와 컵 만을 남긴 저녁 식탁에 앉아서 잠시 묵상에 잠겨본다.
모든 것이 풍족하다고 할 때, 거기에는 항상 무엇인가가 결핍되기가 쉬운 것 같다.

어렸을 때 하교길에 항상 나를 유혹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핫도그”라고 불렸던 음식이었다. 핫도그는 겉으로 볼 때는 설탕이 뭍어서 두툼한 것이 참 먹음직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 50원짜리 핫도그를 먹을 때마다 항상 아쉬웠던 것은 그것을 파는 아주머니가 케챱을 조금만 발라주려고 한다는 것이었고, 한 입 두 입 베물어 먹어들어가다보면 소세지는 어느새 사라지고 밀가루 만이 남는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소세지로 속이 꽉찬 핫도그를 만들어 케찹을 듬뿍 발라먹으리라 다짐했던 기억이 있다. 언제나 아쉬움이 남음에도, 그 핫도그의 감칠 맛은 지금도 잊기가 쉽지 않다.

오늘 나의 저녁 식탁위에 오른 핫도그 (미국사람들은 “코온독”이라고 함)는 정직한 핫도그였다. 아주 크고 속이 소세지로 꽉차 있었을 뿐아니라, 케찹은 내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부어서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흑인 요리사 아저씨가 썰어준 큼지막한 햄덩어리 두 조각은 참으로 잘 요리된 것이었다. 하지만, 왠일인지, 이 햄덩어리도 예전에 한국에서 김치찌게를 먹다가 간혹 건질 수 있었던 돼지고기의 그 맛과는 정말로 비교하기 싫었다.

힘들고 부족하고 모자라던 시절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의뢰하며 살다가도 태평성대의 시대가 도래하면 타성에 젖어 하나님을 잊어버렸던 구약시대의 선진들을 떠올려 본다. 그들에게 풍부함이라는 것이 축복이었을까?

내게 오히려 모자라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감사하고 기뻐해야겠다.

어느새 내가 비워버린 빈접시들이 식기 반납대의 돌아가는 레일위를 따라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넘쳐나는 성경책의 홍수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목마름을 잊지않고자 태훈 선배와 함께 당찬 성경읽기 계획을 세웠다. 감사한 저녁이다.

Comments 2

  1. 심준섭 2000.11.29 10:00

    allgrace@empal.com) 10/30[13:42]
    역시 춘익이 형의 글은 언제나 잔잔한 감동을 주는 군요. 저는 요즘 출국 준비로 바쁩니다. 예
    전 준비하던 춘익이 형이 떠오르는 군요. 참 힘든 일임을 이제야 조금 알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아프리카의 아침과 노을 그리고 아프리카의 하늘과 바람이 기대되는 군요. 하지만, 이 사
    이트에 글을 올릴 수 있을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겠죠. 당찬 성경읽기로 풍성한 은혜누리시
    기를 원합니다. 참고) 어제는 황열병(Yel

  2. 심준섭 2000.11.29 10:00

    allgrace@empal.com) 10/30[13:44]
    참고 사항입니다.)
    DHL 가격을 알아보니 한국에서 이디오피아로 20kg보내는 데
    약 577,000정도 들더군요..
    미국에서 이디오피아는 과연 더 쌀지…. 그러면, 춘익이 형한테 부탁하
    는 건데. 바쁘실텐데 못하는 소리가 없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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