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아내가 자녀 양육에 관한 책에서 읽은 얘기를 해주었다. 어떤 집에 아이가 9명 있었는데 어찌나 별나게 놀던지 항상 유리창이 더러웠고 그 엄마는 항상 옆집에 깨끗한 유리창을 부러워했다. 우리집도 항상 저렇게 깨끗한 유리창에 깔끔한 분위기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깨끗한 유리창을 가진 집의 부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고 유리창이 더러운 집을 항상 부러워하며 우리에게도 아이가 많아서 저렇게 항상 더러운 유리창을 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아이가 9명 있는 엄마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어떤 사람을 부러워한 것이다. 어찌보면 나를 포함하여 모두들 상상 속의 누군가를 막연하게 부러워하다가 눈이 가려 내가 가진 것을 보지 못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돈이 많은 누군가를 부러워하지만 정작 그 사람은 돈없어도 행복하게 사는 누군가를 또 부러워한다. 그 돈없는 사람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돈많은 그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렇게 실제와는 다른 서로를 부러워하고 자신의 상황에 대해 푸념하는데 많은 시간과 힘을 소모하다가 생을 마친다.
이전에 보았던 ‘바쁜 링컨을 찾아간 쿠키 잘만드는 노부부’ 연극이 생각난다. 링컨이 창구를 열어놓고 사람들의 민원을 직접 하나씩 들어주고 처리해주던 시절 매일 매일 밀려오는 민원에 맥이 빠져 하루를 마무리하려던 순간 찾아온 노부부를 마지막으로 응대했다. 문에 들어올때부터 자신의 처지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사람들과 달리 노부부는 정성스럽게 구워온 쿠키 한보따리를 내놓았다. 대통령의 수고를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구운 쿠키였다.
머나먼 미국땅에서 어린아이 마냥 칭얼대며 막연하고 이기적이며 향방없는 기도제목들을 가지고 믿음없는 간구를 연발하고, 그것이 이루어질지 아닐지를 의심어린 눈빛으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내게 주신 축복과 은혜들을 가득 안고서 넘치는 감사와 감격으로 주님께 달려가 하루종일 사람들 필요를 채우시느라 뻐근해진 어깨를 주물러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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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게 하실 수 있나이다”(눅 5:12) 나의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기도생활을 권한다.
답글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