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공론

No. 184 Name 이춘식 Date 2004.01.11 09:02 Comments 3

섬김에 관해 많은 말을 할 수 있고 수많은 암송구절을 떠올릴 수 있지만 실상 섬김을 배우는 것은 추운날 동아리방(형제들이 지내는 써클룸)의 쓰레기를 버릴 사람이 필요할 때 선뜻 나서지 못하는 (1) 내 자신의 낯선 모습을 보는 눈이 필요하며, 다음으로 (2) 그런 모습이 나의 참 모습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아픈 수용이 필요하며, 그 다음으로 (3) 섬김을 배우는 것에 대한 강한 가치를 부여하는 과정, 그리고 이후에 (4) 나의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그토록 고결한 나의 손과 발을 사용하여 쓰레기를 들고 나가는 것이 필요하고, 마지막으로 (5) 내가 뭔가를 한냥 우쭐대지 않고 당연히 할일을 했으며 칭찬을 하나님께만 바라는 마무리 동기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밑바탕이 되어야할 것은 (3)번인듯 하다. 섬김을 배우는 것이 왜 그리도 중요한가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이 모든 단계를 통한 성장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많은 형제들이 이 단계에서 중단하거나 정체되어 있는 것을 자주 본다. 더 이상 생활관 생활도 매력적이지 않으며 그냥 일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하고 주저앉게 된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속하신 수많은 축복의 바다가 바로 그 너머에 있는데도 말이다! 내 자신도 이 단계를 겪으며 수없이 동기를 돌아보고 확신을 되새겼다. 나의 경우 예수님의 죽기까지 섬기신 사랑이 큰 동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기신 그 겸허한 모습이 도전이 되었고 멋지다고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나도 겸손하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책상에서의 그런 결심은 (3)번 과정에서의 동기력(driving force)가 될뿐(사실 그것도 큰 역할이긴 하지만) 나머지 과정을 수행하는데는 또 다른 용기가 필요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고 뛰어넘기 힘든 과정은 바로 (1)번과 (2)번이라고 생각되며 일단 (1)번이 안되면 거기서 끝이다. 가끔은 힘들게 옆에서 누군가가 용기와 사랑으로 (1)번과 (2)번을 대신 도와주는 경우도 있는데 내 생각에는 그게 제일 빠른 방법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않고 나의 반응이 시원치않으면 금새 그 사람을 잃게된다. 그러고보면 지금까지 내 곁에서 이름없이 빛도없이 그 역할을 묵묵히 감당해왔던 귀한 형제들에게 마음속 깊이 감사하게 된다.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딤후3:7)

두렵고 경계가 되는 말씀이다. 문득 탁상공론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전부터 들어왔지만 최근에 더욱 실감하는 것이 제자는 탁상에서 태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성경공부가 진행되고 있고 섬김에 관한 다양한 정의와 토론이 진행되지만 정작 섬김은 쓰레기를 버리는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그 둘 사이에 생기는 간격이 너무나 크다. 섬김에 관한 명확한 정의와 사례, 섬김을 방해하는 요소들, 섬김을 개발하는 방법들이 내 머리속에 정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으로 내가 그렇게 사는것같이 착각하지말자. 어쩌면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순간 나는 내가 섬김에 대해 뭔가를 깨닫고 대단한 성장을 경험했다는 오류에 빠지고 있는지도 몰라 두렵다. 지금 당장 (1)번에서 (5)번까지의 과정을 거침없이 달려갈 건수가 없을까? 지금 세탁기의 탈수가 끝났다는 소리(삑삑소리 3번)가 들린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빨래를 널어야겠다.

Comments 3

  1. 김원기 2004.01.13 03:32

    쓰레기통 비우는 일이 정말 복잡 다단한 사고의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 지네요^^
    정말 사고(thinking)가 입체적이십니다. ^^ 저는 형에게서 (4), (5) 과정을 많이 지켜 본 것 같네요.

  2. 오성우 2004.01.13 06:38

    저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괴로워 하다가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2)을 못 넘기는 경우인 것 같아요 앞으로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2), 섬김의 가치를 깨닫도록 의뢰하며(3), 실제적인 액션을 보이며(4), 예수님 앞에 자신은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여야 겠습니다(5).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이 삶은 가치가 있다는 것 인하여 감사가 됩니다.

  3. FBIagent 2004.01.20 06:35

    지금까지 배워온 섬김을 비롯한 성령의 열매들을 맺을 수 있는 방법이 정형화되어 있다면, 성경은 지금의 형태가 아닌, 고등학교 시절 숱하게 베고 잤던 정석의 모양을 취하여 여러 공식들을 제공하고 있겠죠 ^^;

essay_choon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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