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같이 살고파

No. 114 Name 이춘식 Date 2002.03.14 22:15 Comments 0

연구실 앞 작은 공간이 있는데 벤치가 있고 비록 깨끗한 강은 아니지만 작은 중랑천이 흐르고 그럭저럭 좋은 쉼터이다. 벤치에 앉아 커피 한잔 하며 오랜만에 한 형제와 여유를 즐겼다. 멀리 내부순환로를 타고 많은 차들이 숨가쁘게 움직이고 2호선 지하철도 양방향으로 왔다갔다한다. 한참동안 멀리 쳐다보다가 가까이 있는 나무에 시선이 머물렀다. 작은 공간 주위로 학교에서 조경에 꽤 신경쓴 것 같았다. 아직은 작은 나무들이 여기저기 꽤 그럴듯하게 심겨져 있다. 바쁘게 움직이는 차들과 달리 나무는 움직이지 않는다.

나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바람에 따라 산들산들 미동이 있을뿐 그냥 조용하다. 멀리 있는 산을 바라보니 산도 가만히 있다. 산은 나무보다 더하다. 바람이 불어도 그냥 가만히 있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도 가만히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모든 것들이 움직이겠지만 순간 보기에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차들과는 대조적이다.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만든 것들은 주로 빨리 움직인다. 반면 하나님께서 만든 것들은 천천히 움직이므로 사람들의 시간대에서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과 사람의 시간표가 다르다. 하나님은 영원을 사시지만 사람은 길어야 100년을 넘기지 못한다. 사람들은 뭔가 빨리 일이 이루어지기 원하고 조급하게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시간계획은 훨씬 느리다. 하나님의 시간계획을 읽을 수 있다면 이해되지 않는 많은 일들이 이해될 것 같다. 당장에 이해되지 않는 불행한 일들… 뭔가를 놓고 기도하지만 응답이 없는 것 같은 순간들… 빨리 성장하면 좋겠지만 그토록 힘겹게 자라가는 형제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시간계획 속에서 느림보걸음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무처럼 살고싶다. 그냥 가만히 있는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를 맞고 하늘에 걸어놓은 햇빛을 맞으며 광합성을 하여 먹고 산다. 비를 빨리 오게 해달라고 보채지 않고 구름을 걷고 해를 보여달라고 안달하지 않는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해가 뜨면 그것으로 감사하는 듯 가만히 주어진 상황을 즐긴다. 나에게 주신 사람들… 해야할 일들… 물질들… 나무처럼 감사하며 조용히 살아야겠다.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변하고 있는 하나님의 시간계획에 내 자신을 맞추어 나가야겠다. 나무처럼, 기왕이면 소나무처럼 살고싶다. 소나무는 항상 푸르니까.

essay_choon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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