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누가복음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마음을 묵상하며 감동을 받는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가까이 가시면서 주위에 제자들은 하나, 둘 떠나가버린다. 급기야 유다는 예수님을 은삼십에 팔아버리고 따라오던 베드로는 3번 주님을 부인한다. 배신감은 참 쓴 것이다. 나는 이런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다. 당시에는 참으로 쓰고 힘들었지만 주님의 마음을 묵상하고 조금이나마 동일시하는데 도움이 된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순간에 부인하던 베드로는 처다보신다. NIV에서는 이 부분을 “The Lord turned and look straight at Peter”라고 표현한다. 베드로의 눈과 마주친다. 베드로는 주님의 눈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때의 주님의 눈을 보지 못했으나 아마도 그 눈에는 배신감이 아닌 긍휼이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로 가까이 가면서 점점 그 분은 혼자가 되신다. 마음을 나눌만한 사람도 없었고 어려움을 호소할만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주님께서는 아버지로부터도 단절되는 절망을 맛보셔야만 했다. 제사장, 서기관, 율법사, 군중들, 제자들 누구 하나 그분과 함께하시지 않았다. 소리지르는 군중들은 소경과 병든자를 고치며 떡과 물고기를 배불리 먹을 때 함께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그 분을 영접하는 것 같았으나 거짓 영접이었다.
예수님 주위에서 그 분을 진실로 영접한 사람들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10명의 문둥병자 중 사마리아인 한 사람이 있었고 생활비 전부를 내어드린 과부가 있었다. 주께 생활비 전부를 기름으로 부었던 마리아가 있었고 용서받은 삭개오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주님의 십자가 옆에 달렸던 강도가 주님과 함께했었다. 온 세상 두루 감찰하시며 영접한 자를 찾으실 때 나도 주님께 발견되리라.
(요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 1:11) 자기 땅에 오매 3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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