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하며 느끼는 것들

No. 329 Name 이춘식 Date 2009.10.18 15:50 Comments 1

NCI에 온지 벌써 5개월이 넘었다. 그동안 참으로 여러가지 일들로 바빴다. 처음에는 적응하는 단계에서 해야할 다양한 문서작업들로, 그리고 얼마 후부터는 이곳에서 진행 중인 연구들을 파악하느라, 그리고 최근에는 이곳에서 하는 연구와 UF와 공동으로 하는 연구들 사이에서 시간을 안배하느라 바빴다. 포닥을 마치고 직장을 잡은 대부분의 연구원들의 공통적인 고민이겠지만 나에게도 이전 boss인 Dr. Bolch와 같이 하던 연구가 계속적인 연장선 상에서 내 시간을 빼앗아가는 상황이 발생해왔다. 사실 몸은 NCI에 있지만 일주일에 많은 시간을 Dr. Bolch와 전화회의와 그쪽과 연관된 일들로 보내왔다.

UF에 있는 동안 NCI에서 따온 과제가 있었고 그 과제로 내 월급을 충당했고 또 그 과제의 연장선으로 나를 assistant professor로 채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내가 불쑥 NCI로 오게되자 더 이상 그 일을 감당할 UF 학생이 없는 공황상태가 되었다. NCI에서는 과제를 주는 입장이었고 어느새 내가 과제를 교수님꼐 드리는 입장에 서게 된 것이다. 이런 계약 관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대부분의 일은 여전히 내가 하게 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분기마다 보고서를 쓰는데 내가 나한테 보고서를 쓰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UF에 있는 동안 CDC에서 받은 과제가 있었는데 dirty bomb이라고 방사능물질로 이루어진 폭탄이 뉴욕 한복판에 터질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였다. 이 과제의 최종 결과물로 software를 만들어서 주기로 약속을 했는데 중간 단계에서 내가 NCI로 오게 되었고 그 일을 계속 맡아서 할 학생이 없었다. 교수님은 자연 스레 그 일을 정말로 미안하지만 마무리해주기를 바랬고 얼마전 뜬금없이 software 만드는 일로 하루밤을 새게 되었다. 결국 software는 완성되었고 CDC에서 그 결과물에 감동을 받아 1년짜리 과제로 연장하기로 했단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나는 수시로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문제의 핵심에는 항상 시간과 돈 문제가 걸려 있다. NCI과제나 CDC과제 모두 인건비를 받도록 되어있으나 NCI에 있는 공무원으로 나는 놀랍게도 외부에서 동전 한푼도 받을 수 없게 되어있다. Consulting도 못하게 되어있고 심지어는 작은 선물도 25불 이상 짜리이면 받지 못하게 되어있다. 일을 하는 것은 재미있으나 그 일을 무상으로 해야하는 상황에서 갈등이 되었다. 그 일들을 하느라 NCI에서 주어진 일들에는 자연스레 소홀히 하게 되었다. 사실상 NCI에서 주어진 일들만 하는데는 일주일에 이틀만 근무하면 될 정도로 작은 분량이었다.

하원이에게 밤마다 읽어주는 이야기책 중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옛날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구두를 만들면서 먹고 사셨는데 점점 장사가 안 되어 먹을 것도 없고 불 땔 나무도 없고 신발 만들 가죽만 조금 남았단다. 그 날 밤 춥게 잠을 나고 나왔는데 아침에 보니 가죽은 온데간데 없고 예쁜 신발이 놓여있었다. 도대체 누가 신발을 만들었는지 알지도 못한 채 그 신발은 고가에 팔렸고 밤마다 가죽만 준비해 놓으면 다음날 아침 신발이 있었으니. 그렇게 할아버지 할머니는 부자가 되었고 어느날 대체 누가 신발을 만드는지 한번 보고 싶어 가죽을 준비해놓고 문 뒤에 숨어 있었다. 그 순간 요정 둘이 나타나 신발을 열심히 만드는 숨막히는 상황을 목격하게 되었다! 요정들은 너무나 즐겁게 놀라운 솜씨로 신발을 만들었지만 막상 그 요정들이 입은 옷과 신발은 너무나 허름하여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 요정들을 위해서 예쁜 옷과 신발을 만들어 주었고 두 요정은 기뻐하며 그 후로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뭐 그리 엄청나게 영적이고 성경적이지는 않으나 이 짧은 이야기를 밤마다 하원이에게 반복해서 읽어주면서 비록 누더기 옷을 입었지만 기쁘게 일하는 요정들에게 감동을 받았다. 그것은 섬기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이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이 섬김의 원리에서 도대체 예외가 되는 영역은 무엇일까? 어디까지가 섬김을 적용할 영역이고 어디까지는 냉철하게 손익을 따져야할 영역일까? 성경에 주신 주님의 원리에는 예외가 없다고 믿고 싶다. 때로는 바보처럼 보여도 모든 것에 관여하시고 누구보다 자세히 나를 아시는 주님께서 이해하시고 같이 걸어가주시고 좋은 것으로 갚아주시리라 믿는다. 이번 주에도 맡겨진 일들을 우직하게 기도하며 즐겁게 감당해야겠다.

Comments 1

  1. 이승묵 2009.10.19 03:22

    힘들어도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는 삶에 하늘의 은혜가 임하길 기도한다.

essay_choon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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